릴레이 편지-강신영(61.경제)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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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4-12-03 14:12 조회25,79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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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긴장 속에 살던 ‘도쿄의 추억’ 그립다
박정일(61·경제) 에게
얄미운 녀석. 아마도 너는 나와의 추억을 지웠나 보다. 나는 아직도 너의 미소와 시원한 성격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나나 너나 61년 입학하여 빨간딱지(학사경고)받고서 뒷뜰 굴뚝 옆에 앉아 서강고등학교(?)만 욕하였었지.그 시절에도 교환실과 도서실만 지키던 손정식은 박사가 되어 황혼 나이에도 한양대학 교수생활을 즐기고 있지.
내가 너를 강렬하게 기억하는 것은 동경 주재원 시절의 일들이야. 1975년도, 그 당시만 해도 주재원 나가기란 지금의 로또 복권 1등 당첨되는 것 보다 힘들었었지. 조총련이 드라큘라 보다도 무서웠던 시절, 중앙정보부에서 하루종일 보안 교육받고 여권 내는데 나는 4개월이나 걸렸지. 연좌제로 친척 한 사람만 북에 협조했어도 신원조회에서 힘들었지. 수시로 간첩잡았다는 뉴스가 국민들을 떨리게 하였던 시절, 동경은 조총련을 통한 간첩의 아지트였고 박정희 정권시절 간첩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지.
조총련과 사진만 찍혀도 잡혀갔고, 북한 기사나 한국비판 기사가 실린 문예 춘추 등 책 한 권만 숨겨오다 걸리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조서를 받았지. 그때만 해도 경제는 북한이 좀 앞서 있었지. 그 당시 동경주재원 간다면 100촌 이내의 친척들이 카메라를 빌려가지고 공항에 배웅나와서 우리와 사진 한 장 찍느라고 요란했지. 신성일 부럽지 않았지. 모두들 악수하면서 당부하는 말은 “조총련 조심해” 였지.
주재원 생활 중 어쩌다 한국출장이라도 나오려면 버스 대절해서 공항에 나올 가족친지들에게 줄 선물꾸러미 사느라고 석 달 월급인 백만엔은 들었었지. 한국에 머무는 동안 그 귀한 여권을 껍데기만 보여줘도 술집 웨이터들은 절하는 경사도가 달라졌지. 또한 그 시절에는 일본 조총련인 문세광이 박대통령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를 권총 살해한 직후라서 한․일 감정이 극에 달한 때였지.
정일아, 너 신바시 사건 기억하니? 회사는 달랐지만 서툰 일본말로 업무를 보자니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때였지. “우리 오늘은 하루종일 한국말을 써보자. 욕도 해 가면서” 우리는 큰소리로 “웬수같은 일본놈들아, 육영수 여사 살려내”, “죽일 놈들” 이렇게 떠들면서 동경바닥을 방황했었지. 몇 달 후 우리 가족이 오자 너는 외톨이가 되었지. 기무치 선물받으러 집에 자주 들렸었지. 어쩌다 한번 서울사람들이 출장이라도 오면 한결같이 김 한톳과 죠니워커 한병 들고 왔지. 3년 후 귀국할 때 우리는 빌릴 수 있는 돈은 모두 빌려 이삿짐에 전자 제품 수백 종을 사서 컨테이너로 가져왔지. 그때 너는 장사(?) 좀 되었니? 나는 팔지 않고 보관만 했다가 신제품들 쏟아져 나오는 통에 망했어. 1백만엔 주고 샀던 세계최고 카메라 니콘도 아직 장롱 속에 있는데 디지털 카메라 출현으로 이제는 골동품이 되어버렸단다. 그렇지만 김치는 항상 담가 주었잖아? 너와 나는 우리는 여권테이프를 끊은 이상 앞으로 되도록 많은 나라를 돌자고 약속했었지. 지난달에 나는 동유럽 6개국을 돌아와서 지금까지 66개국을 다녔다. 이제 장거리 여행은 지치더라.
너는 미국으로 떠난 지 20년이 되었지. 너 나쁜 놈아. 그동안 편지 한 장 보내주고 소식 없더니 한달 전인가 한밤중에 나한테 전화 걸어서 “나야, 나 정일이인데 한국왔다가 너무 바빠서 너 못 만나고, 내일 새벽 분당에서 미국으로 그냥 돌아가게 되었어. 보고싶은데 미안해. 미국 한번 와” 잠결에 이 말을 듣고 너한테 무엇이라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아마도 화가 나서 다시는 너를 보지 않겠다고 말했겠지.
정일아, 한국 남성의 평균 수명이 72세란다. 20년간 못 본 너를 남은 9년 사이에 만날 수 있게 되겠니? 그 긴장하고 스릴있던 동경의 추억을 밤새우면서 이야기 못해보고 인생을 마칠 것 같은 현실이 서글프다. 우리 죽기 전에 70개국 여행 채우고 즐겁게 살자. 아무도 욕하지 말고. 너는 나보다 더 살아야 한다. 술 너무 먹지말고 건강해라. 안녕!
강신영(61·경제) 동문은 현재 에스키모수산 대표로 졸업후 대우그룹을 거쳐 지난 30여년간 수산업계에 종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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