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안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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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4-06-09 15:06 조회20,97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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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말하고 글쓰기가 인문교육의 핵심"
모든 분야에서 국제화를 이야기하는 시대다. 국제적인 교육 환경과의 비교 속에서 서강의 ‘인문정신’의 나아갈 바를 생각해 본다는 취지에서, 최근 미국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귀국한 인문대 강영안 교수(철학과)와의 인터뷰를 싣는다. 『서강옛집』은 앞으로도 기회 닿는 대로 각 단과대를 찾아다니며 각 대학마다의 개성 있는 학문정신을 국제화 시대에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 고민하는 인터뷰들을 실을 예정이다. <편집자주>
빗줄기가 부딪치는 인문관의 창문들은 꼭 수족관 같았다. 마치 귀한 손님이 도착하면 현관 앞에 기다리고 섰다가 소리쳐 알리는 연회장의 충실한 하인처럼, 올해도 어김없이 구름은 비를 몰고 와 소란스럽게 유리창을 두들기며 여름이 도착하셨다고 알리는 것이다. 숨어있는 온갖 풀 냄새를 깨워서 지표면으로 끌어올리는 그 아름다운 초여름의 빗소리를 들으며 인문관 교수 휴게실에서 강영안 교수를 만났다.
안식년 전체를 미국에서의 교수 생활에 할애하고 얼마 전 귀국하였으니, 그 생활이 어땠는지 근황부터 궁금했다. “지난 2월말까지, 14개월 동안 미국 미시간의 칼빈 칼리지(Calvin College)에 머물며 동양 철학과 서양철학을 가르쳤습니다. 80년대에 네덜란드 레이든 대학에서 1년간 형이상학과 인식론을 가르쳤지만, 미국 쪽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교육에서 뿐 아니라, 저술 활동에서도 강교수는 점점 활동 영역을 국제적으로 넓혀가고 있다. 내년에는 한국에서의 철학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국내 최초로 본격적으로 연구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은 저서 『우리에게 철학은 무엇인가?』가 일본어로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귀국한 후 현재는 한국칸트학회 회장과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대표 등을 맡는 등 학계와 실천운동 양쪽에서 계속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서구 대학의 인문학 교육에서 가장 핵심적인 점은 무엇일까? 가장 궁금했던 문제부터 답을 구했다.
“모든 인문교육은 기본적으로 제대로 읽고 토론하고 쓰는 훈련으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텍스트를 분석하고 종합할 수 있는 읽기 교육, 제대로 말하기를 연마하는 토론 교육, 논증적 과정을 통해 자기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설득해 내는 글쓰기 교육이 서구 인문 교육의 핵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왜 인문학 교육이 중요한지 해답이 발견된다. 인문학은 사람이 제대로 사람 구실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제대로 구실할 수 있는가? 세상을 제대로 보고 제대로 판단하고,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하는 데는 무엇보다 제대로 읽고, 생각하고, 제대로 생각을 말로,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바로 이렇게 사람됨의 가장 기초적인 면모의 형성을 인문학 교육이 담당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영안 교수는 말한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인문학은 단지 실용적 활용가치를 척도 삼아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서구 대학의 인문 교육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이라면, 바로 이런 잘 읽고 쓰고 말하는 법의 연마를 위해 학생들을 끊임 없이 토론으로 이끌어내고 또 각자의 개별적 수준에 맞춘 지도를 한다는 점입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모든 과제물은 그저 제출하고 점수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수의 코멘트가 가득 쓰여진 채 되돌아옵니다. 다시 말해 교수들은 엄청난 시간을 할애해 가며, 학생들이 비판에 부딪쳐서 자기 자신의 생각을 반성하고 새로운 문제 해결 방안의 모색을 위해 사유의 노동을 하게끔 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거지요. 이 과정에서 내용의 단순 전달 같은 주입식 교육은 철저히 지양됩니다.”
전문지식 습득과 인간됨의 형성교육 병행돼야
교수들은 제자들 영혼 돌보는 '목자' 의식 필요
이어서 강영안 교수는 우리 대학 교육의 현실이 너무 ‘지식의 전달’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를 표명했다.
“인문학은 지식 전달 이상의 도야(陶冶)를 목표로 해야 합니다. 여기서 도야란 바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힘써 그들의 제자들에게 가르치려 했던 ‘영혼을 돌보는 일’을 일컫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혼을 돌보는 일’,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인성교육에 해당한다고 할만한 것은 인성교육을 위한 어떤 교양과목 하나를 만든다고 해서 성취될 일이 결코 아닙니다. 영혼을 돌보는 교육은 ‘모든 과목들 속에’ 필수적으로 숨겨져 있는 또 하나의 과정(hidden curriculum)이어야만 합니다.”
이런 식의 교육이야말로 예수회 교육 기관에 가장 걸맞은 이상이 아닐까? ‘지식의 형성’과 ‘인간됨의 형성’이 서로 겉도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식 전달 배후에서 인간됨의 형성이 연마되는 것―아마도 이것이 단순한 지식의 습득을 너머서, 이웃과 하느님을 섬기는 법을 가르치기를 열망하는 신심 깊은 교육기관이 힘 기울여야 할 바이며, 서강이 다른 대학들과 긍정적으로 차별화 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라고 강교수는 진단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교수들이 먼저 인문학적 소양을 가져야 합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교수들이 단지 지식의 전달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영혼을 돌보는 목자임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
이렇게 말하며 강영안 교수는 학부제 시행 이후로, 과에 대한 소속감의 상실, 그로 인해 생기는 현상인 과교수들과 학생들 사이의 거리감 등이 영혼을 훈련하는 참된 의미의 인문 교육을 방해하는, 극복되어야할 장해로 꼽는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강교수가 현실적인 차원에서 지적하는 것은, 학생들과 교육자 사이에‘참된 영혼의 교류'는, 지금의 학생-교수 비율로는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강 교수가 강의하던 칼빈칼리지 같은 경우 학생 대 전임 교수 비율이 12대1 정도였는데, 이 정도 수준으로끌어올리지 않는다면, 여전히 강의실은 지식을 주입하고 지식을 구입하는, 지식의 유통 시장에 머물고 말리라. 전문지식의 전달 능력과 더불어 영혼의 목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을 지닌 훌륭한 교수들을 다수 확보하는 일은 서강의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영안 교수는 강조한다.
그렇다. 고개돌려 회상해 보라. 서강은 무엇으로부터 출발했는가? 서강은 인문학이라는 기품 높은 화초를 가슴에 안고 영혼을 돌보는 신성한 교육의 장으로서 첫발을 내딛지 않았던가? 잘 읽고, 말하고 쓰는 법의 연마(비판적 사고 교육), 영혼을 돌보는 수련(인성 교육), 이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으로서 다수의 소양 있는 교수진의 확보—아마도 이러한 세 가지 설계도가 위에서 짜여지는 서강의 미래 인문학은 깊은 뿌리를 지닌 견실한 나무처럼 그 시원한 그늘을, 함께더불어 살아가 고 있는 세상의 모든 이웃들의 머리 위에드리울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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