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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넴과 로또 복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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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3-03-25 09:03 조회18,9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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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8마일'이란 영화를 봤다. 제2의 엘비스라고 불리는 천재 백인 래퍼 에미넴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기대가 커서 그랬던지 보고 나서는 내심 실망했다. 거창한 성공 스토리도 없었고 박진감 넘치는 스릴도 별로 없었다. 다음 전개가 어찌될지 예측 가능한 그저 그런 이야기였다.

 

그런데 묘했다. 주인공 지미(극중 에미넴)처럼 살아가는 게 소위 '폼'은 좀 없더라도 맞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개인적으로 랩이라는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에미넴에 대해서라곤 신문에서 읽은 기사가 전부인 나로서는 사실 외설적이고 자극적인 가사들을 실어 물의를 빚곤 했다는 그가 뜨기 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상당히 궁금했었다. 물론 영화는 다소 각색이 됐겠지만. 

 

내가 흥미롭게 지켜본 대목은 가수 지망생 지미가 트레일러 같은 엄마 집에 비굴하게 얹혀 살면서도, 생계를 위해 전과자들이나 일하는 제철소에서 근무하면서도 자신의 생활에 매우 충실했다는 점이다. 한탕주의를 꿈꾸는 아이들 속에서 당당하게 일했고 밤에는 랩 가사를 썼다. 마침내 흑인들과 랩 실력을 겨루는 쇼다운에서 승리한 후에도 야근해야 한다며 제철소로 향했다. 

 

'확' 깨지는 느낌이었다. 사회생활 4년차,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때때로 만족할 만한 성과가 없다는 자괴감에 빠져 삶에 싫증나고 조바심이 났다. 그리고 극중 흑인 아이들처럼 대박을 꿈꿨다. 

 

3월, 꿈을 안고 새로 태어나는 이들이 많은 시기다.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딛는 졸업생들, 화려한 대학생활로 기대에 부푼 새내기들. 모두들 희망을 안고 열심히 노력하겠지만 뜻하지 않은 복병으로 때때로 힘이 들 것이다. 그 때마다 마음을 추스려 보지만 한편으론 신기루 같은 그 무엇에 기대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로또가 그렇게 인기인가 보다. 로또 열풍을 취재하러 갔던 사회부 경찰기자들이 취재 후 시경 캡의 지시(?)로 각 5장씩 긁어봤다는 사내 소문도 들었다. 나도 하나 사볼까 했지만 게으른 탓에 아직 로또복권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로또는 현대인의 대박심리가 빚어낸 상품일 뿐 삶에 대한 지미의 처절함과 완고함은 들어있지 않다. 

 

결과만 보면 로또든 에미넴이든 성공의 표상이지만 둘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한꺼번에 많은 것을 기대하기 보다 자신이 처한 현재를 인정하고 한 발씩 정진해 나가는 지미처럼 작은 노력들을 실천할 수 있는 성실함이야말로 어느 훗날 우리들을 제2, 제3의 에미넴으로 이끌어 줄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문주영(95 국문)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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