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홍영균(64경제)동문-결국, 우리는 서강으로 하나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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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5-10 17:29 조회4,12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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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서강으로 하나될 것입니다
홍영균(64 경제) 동문 인터뷰
지난 4월 20일 ‘서강 60주년 홈커밍 데이 행사’가 열렸다.
이 날 행사에는 64학번 동문 50여 명이 참석하여 동기들과 오랜만의 만남을 즐기며 지난 시간을 추억하였다.
이에 더해 64학번 동기회 이름으로 학교 발전기금 1억 원과 동문장학기금 1,000만원을 기부하며 행사의 의미를 더하였다. 64학번 동문들이 60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끈끈하게 유대감을 가진 공동체로 남을 수 있었던 독보적인 이유로 한 동문이 언급되어 왔다.
현재 64학번 동기회 대표로서 모임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계신 홍영균(64경제) 회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공유하고자 한다.
▲ 홈커밍데이 참석 소회를 발표하는 홍영균 64학번 동기회 회장
Q1. 회장님께서는 굉장히 폭넓은 활동을 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어떤 일상을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의약품을 병·의원 및 약국에 납품하는 의약품도매업체로 올해 설립 40년을 맞이하는 신성약품(주)의 대표로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호남정유(현 GS칼텍스)에서 커리어를 시작하였어요. 이후 의약품도매업 쪽으로 발을 내딛었습니다. 당시 서강 동문들은 공부를 계속하여 교수의 길을 걷거나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해 왔던 것에 비하면, 서강인의 표본에 조금 동떨어진 면이 없진 않지요?(웃음)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도 많은 인간관계를 겪어 봤지만, 학교 동창들과의 모임이 마음이 가장 편하더군요. 지금도 초등학교 동창들과는 30명 정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어요. 어릴 적 이름이 ‘홍지영’이었는데, 지금도 ‘지영아’ 이렇게 부르면서 연락하고 그럽니다. 그리고 25년째 64학번 동기모임 대표를 하고 있어요.
Q2. 이번 홈커밍 60주년을 준비하면서 들려주고 싶은 에피소드나 재미있는 이야기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64학번이 올해 80세입니다. 경제활동과 거리를 두는 나이가 되었죠. 그래서 이번에는 참석 자체에 의미를 두고자 했습니다. 많이 모이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그래도 친구들 73명이 연락이 닿아 최소 1인당 50만원을 모금하기로 하고 다 같이 한 마음으로 참여해 준 덕분에 결국 귀중한 1억 원을 모았습니다.
▲ (왼쪽부터) 김광호 총동문회장, 홍영균 64학번 동기회 회장, 심종혁 모교 총장, 우재명 법인 이사장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은 친구들이 있음에도 이토록 작지 않은 규모로 모금할 수 있었던 건 우리 64학번 동기들의 변함없는 유대 덕분입니다. 64학번 동기들은 이 기금을 모교의 발전기금으로 전달할 수 있어서 다들 몹시 기뻐했습니다.
64학번 동기들은 기존 모임도 잘 활성화되어 있고 우리들끼리 네트워크가 상당히 좋아서, 어떤 동문은 이번에 우리 64학번들이 사이가 좋은 것을 보고 63학번인데도 불구하고 64학번 하겠다고 주장하던 동문도 있었습니다.(웃음) 재학 시절 나이 차이가 조금 있어 잘 못 어울리던 64학번 동문도, 이번에 와서 다 같이 얼굴도 보고 참 즐거운 추억을 쌓았습니다.
Q3. 64학번 동기 모임이 활발합니다. 이번 60주년 홈커밍데이에 상당히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는데 동기들을 모이게 한 어떤 원동력이 있으신지요?
우리 64학번 동문회는 회장, 총무 2명(남1, 여1)과 카톡방을 운영하는 방장 1명으로 조직되어 있습니다. 카톡방은 공지를 위한 톡방과 친목을 위한 톡방으로 구분하여 나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동기모임 카톡방 인원은 83명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우리 64학번은 입학할 때 285명이 입학을 했고 그 중 80여 명 정도가 퇴학, 또는 타 대학으로 편입학하여 떠났고, 졸업은 200명 정도 했습니다. 이 중 미국, 캐나다에 거주하는 동문들이 30여 명 정도 있습니다. 이들과도, 여전히 네트워킹이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원래 학과 별로 따로 모였는데, 인원도 많지 않은데 전공 별로 모여서는 동문 모임이 유지되기 쉽지 않겠더군요. 그래서 전공을 막론하고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도록 통합시켰지요. 다양한 배경의 동기들이 한 데 모이니, 모임에 활력이 돋고 관계가 확장되면서 모임을 이어나갈 어떤 구체적인 계기가 생기더군요.
▲ 4월 20일 홈커밍데이 기념 촬영 중인 64학번 동문들
그리고 64학번 동기모임은 회비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여건이 되는 동기들이 서로 협찬하여 기금을 마련하여 동기회비가 상당히 모여 있습니다. 올해 입학 60주년을 맞이하여 64학번 동기 모임을 생각하고 있어요. 2024년 10월 18일에 충남 보령으로 버스 2대 정도 준비해서 1박 2일과 2박 3일 코스로 나누어서, 참여하는 동기들의 일정에 맞게 행사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 행사에는 미국에 있는 64학번 동기들도 합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멋진 추억을 한 번 남겨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전체 단위로 모임도 진행하고, 소규모 모임도 활발합니다. 최근에는 영문과 동기 하나를 배웅해 주었어요. 해외 사는 친구인데 5월 5일까지 한국에 있다가 간다고 하길래, 영문과 동기 12명이 모여서 farewell party를 해줬지요. 우리끼리 참 잘 모이고 또 스스럼없이 잘 놉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동기들 중에 대기업에서 성공한 친구들도 잘 알려지고, 덕분에 학교 발전을 위해 꾸준하게 많은 기여를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어요.
이원영(64 철학) 대한항공 사장, 정익영(64 경영) 현대중공업 부회장, 장동국(64 경제) 현대건설 부회장/현대전자 부회장, 이재도(64 화학) 한국 화학연구소 소장, LS전선 사장 배은출(64 경영), 차재윤(64 경제) 한국무역협회 전무 등이 있으며 대학 교수로 학계에서 활약한 동기들도 상당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전후자(64 영문) 동문이 50만불 기부하고 더 많은 발전기금을 약정했다는 소식도 들은 바 있습니다.
Q4. 이번 홈커밍 60주년 행사가 첫 행사입니다. 다행히 참석해 주신 선배님들께서 만족하시며 좋은 기억을 안고 마무리하였습니다. 혹 향후 행사의 성격이나 발전 방향에 대해서 의견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사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며 염려가 많았습니다. 동기들이 서서히 건강 문제가 생기거나 개인 사정상 참석이 어려운 경우가 부지기수이니까요. 다행히 64학번은 동기 모임이 꾸준히 잘 이루어지고 있다 보니, 이번 홈커밍데이 때에도 많은 동기들과 함께 할 수 있었어요.
다른 학번의 상황은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소수의 동문이 참석하더라도 60주년 홈커밍데이 행사는 총동문회에서 주관하여 지속적으로 해 주기를 바랍니다. 비록 작게 모이더라도, 동문들에게 이러한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서강 동문의 명맥을 이어가는 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총동문회가 메인으로 리드하는 행사가 되어, 동문들이 부담 없이 동기들의 얼굴 보고 지난 추억을 이야기하는 편안한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행사 콘텐츠나 규모를 크고 성대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저 동문들이 마음의 짐을 갖지 않고 편안히 놀고 쉬다 감에 초점을 맞춘 행사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 기념 사진을 촬영 중인 홍영균 회장(가운데)
사족이지만 이번 행사를 준비한 김광호 총동문회장을 칭찬하려고 합니다. 이번 홈커밍데이 때 선배들의 기금 기부에 동참하여 흔쾌히 1억을 기부한 것은 총동문회장의 자격과 역량을 충분히 발휘한 것으로 인정하고 싶어요. 동문들에 대한 지원과 더불어 외부 커뮤니케이션도 원활하게 이끌어 나가고 있다지요? 참으로 감사하고 또 존경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오랜 동문들은 여전히 모교인 서강대학교에 큰 애정이 있습니다. 서강대학교가 결국 우리들의 시작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게 잘 와닿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총동문회에서 동문들이 학교에 대한 애정을 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많이 마련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앞으로 ‘홈커밍데이’라는 명분 외에도 동문 모임이 꾸준히 잘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Q5. 홍 회장님께 있어 ‘서강’은 어떤 의미인가요?
우리 64학번이 서강과 역사를 함께 해 왔지 않습니까? 서강은 젊은 시절 나를 성장시켰고 꿈을 키워준 곳입니다. 나의 모교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크고 서강의 위상이 더더욱 비상하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다 보니 서강의 역사를 지켜보며, 아쉬움이 들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아마 나와 비슷한 학번의 동문들 대다수가 이에 동감할 것입니다. 특히 의대 문제와 관련해서 너무나 아쉽기만 합니다. 우리 시절 서강의 위상은 단언컨대 압도적이었습니다. 일명 SKY 대학의 합격권보다 서강의 합격선이 더 높았습니다. 만약 과거 의대 통합이나 제2캠퍼스 확장 등 학교의 발전을 생각해서 미래와 큰 숲을 보고 판단하고 결정했더라면 지금의 서강은 어땠을지, 여전히 큰 아쉬움을 안고 있습니다.
Q6. 서강대학교 재학 시절, 회장님께서는 어떤 학생이셨을지 궁금합니다. 또 앞으로의 삶의 방향 또는 이루고 싶은 계획이 있으시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나는 학생 때, 성적이 아주 뛰어나지는 않았고 중간 정도였어요. 스트레이트로 졸업하지는 않았고,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를 2년 반 다녀왔었지요. 당시 우리 학교가 워낙 인원 규모가 작아서 학군단은 없었고, 장교로 가려면 해⬝공군 장교 시험을 치러서 통과해야 장교로 복무가 가능했어요. 학창 시절, 나는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나름 리더십이 있었다고 자부합니다. 또 여러 사람들과 나누는 걸 좋아해서 나의 모교인 서울성남고의 성남장학문화재단 이사장도 했었고, 그래서 여태 서강 64학번 동기모임 대표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친구들과 종종 농담으로 ‘아마 내가 세상에 이름을 남긴다면 학생(學生) 대신 이사장의 직위를 남길 수 있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지금은 크고 거창한 꿈은 없고, 9988234가 내 꿈입니다. 무슨 뜻인지 알아요?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틀 앓고 사흘만에 하느님 곁에 가는 것이 소망입니다. 내가 나이가 여든이니 건강이 최고지요.
Q7. 현 시대를 살아가는 서강 동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내가 우리 젊은 동문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딱히 없어요. 다만 바로 앞에 보이는 것보다 조금 먼 미래를 내다보고 의사결정을 하면 좋겠습니다.
나는 호남정유(현 GS칼텍스)에서 4년간 샐러리맨 생활을 했어요. 서강대 출신이라 해외 영업 현장에서 근무했습니다. 그 당시 회사의 내수에 한정된 사업의 한계를 느끼고 사표를 내었지요. 많은 고민과 트러블이 있었던 시기였지만 한 3년 정도 후에, 의약품 도매사업을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당시를 돌이켜 보면, 조금 다른 시선으로 부동산 개발업에 참여한 지인, 일본 종합상사에 취업을 했던 지인 등 각자의 시선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미래의 모습은 달라져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현 시대를 살아갈 젊은 동문 후배들에게는 ‘당장의 눈 앞의 연봉이나 근무조건보다, 조금 더 멀리 내다보고 성장성이 커 오래 몸 담을 만한 기업을 판단할 수 있는 장기적인 시야를 가졌으면 좋겠다’ 는 조언을 감히 해 보려 합니다.
물론 나 역시 함부로 판단할 수가 없어요. 요즘 트렌드를 따라가기에 무척 힘이 들고 젊은이들이 하는 요즘 이야기들을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요즘 사람들의 자산입니다. 단지 우리는 오래 살아봤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보다 조금 큰 시야로 볼 수는 있습니다. 현재 트렌드와 넓은 시야를 다 갖출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공부하는 것도 열심히 하고, 놀 때도 열심히 놀고, 즐겁게 사세요. 공부 하지 말라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다만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하고 무엇보다 즐겁게 사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서강옛집 학생기자 한서정(23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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