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서강동문장학회 해외연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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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9-08 10:36 조회10,99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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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대학 생활의 마지막 여름방학
강미선(14 중국문화)
대학 생활의 마지막 여름방학을 좋은 사람들과 잊을 수 없는 경험들로 마무리 지어 진한 여운이 남습니다. 종강하고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곤자가 대학에서 ESL 프로그램을 듣게 되었습니다. 모교에서 살고 있는 기숙사 이름이 곤자가 국제학사인데, 같은 명칭의 대학이 미국에도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곤자가 대학에서는 매년 2명씩 파견하는 해외연수 장학생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수업에서는 Academic English로 크게 나누어 문학, 소논문 작성, 문법 그리고 설득력 있는 말하기에 대해서 굉장히 집중적이고 몰입적으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프로그램 과정도 매우 체계적으로 잘 짜여있으며 숙제와 퀴즈도 많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학교나 학원에서 배워왔던 영어교육 방식과 다른, 다양한 교육 방식으로 학습할 수 있어 영어에 대한 흥미를 높일 수 있었던 수업들이었습니다. ESL 프로그램에서는 콜롬비아, 멕시코 등 남미 국가부터 친근한 이웃나라인 일본인 친구들까지 다양했습니다. 나중에 서로의 나라 요리를 같이 해먹으면서 서로에 대한 문화도 알 수 있었습니다.
우연히 학교 앞 스타벅스에서는 윤천주(95 생명) 선배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배님께서는 우리를 집으로 초대해주셔서 맛있는 저녁식사를 대접해주셨고, 학부 졸업 후 미국에서 치과의사가 되신 이야기와 미국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또한 시애틀에 거주하시는 동문 선배님들을 만나 뵈었습니다. 신현선(87 컴퓨터) 선배님께서 공항까지 마중 나와주셔서 같이 식사를 한 후, 선배님이 재직하고 계신 마이크로 소프트 본사 구경을 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 재직하시는 다른 선배님들인 허원(00 컴퓨터), 김상희(87 신방) 선배님들도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이후 워싱턴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계시는 이성범(03 화공생명) 선배님과 함께 캠퍼스 투어를 했습니다. 선배님들께서 베풀어주신 배려와 사랑에 감동받았고, 서로의 공통주제인 모교에 대한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2달에 가까운 미국 해외연수가 끝났습니다. 영어뿐만 아니라 미국문화에 대해 알게 되고 미국에서의 좋은 인연들을 알게 되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너무 멋지게 살아가고 계시는 서강동문 선배님들을 만나 뵈어서 더욱 뜻깊었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신 총동문회에게 감사 드립니다.
다친 발, 따뜻한 위로, 고마운 기억
김수민(15 사학)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기내식까지 먹으니 두 달여 미국생활이 끝났다는 게 실감났습니다. 정신없이 짐 싸고 공항으로 갈때까진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만 했지 미국에서 떠난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23살이나 먹었지만 지금까지 혼자 비행기를 타본 적도, 혼자 살아본 적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첫 경험은 미국에서 시작됐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보다 미국에서 참 잘 살았습니다.
미국에 도착한지 한 달 남짓 되었을 때 발등에 금이 갔습니다. 곤자가대학교 국제팀에서 진행한 액티비티를 다녀오는 길에 차에서 내리다 넘어져서 생긴 사고였습니다. 한국 찜통더위에서 다치지 않은 게 어디냐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속상한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했습니다. 우리나라 공공의료보험으로 자란 온실 속 화초 같았던 내가 미국의 정글 같은 의료시스템에 대해 엄청 비싸다는 것 빼고는 아무 것도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다행히 학교에서 보험을 들어줬고, 여행자보험을 따로 들어서 치료비 부담은 덜했지만(그래도 비쌌다) 서류작업과 병원예약 및 의사와 대화하는 것도 벅찼습니다.
수업에 못 가고 학교 보건소에 들러 차례를 기다리면서 함께 해외연수 장학생으로 미국에 온 강미선(14 중국문화) 장학생에게 ‘발이 너무 아파 수업에 못 간다고 선생님께 전해달라’라고 문자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행정팀에 내용이 전해져 10분 만에 국제팀 스태프가 찾아 와 정성스럽게 도와줬습니다. 병원에 갈 때마다 동행해줬고, 자기 집에 있는 휠체어를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주말에 요리를 들고 불쑥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엄마 없는 곳에서 다치면 서럽다고 밥을 잘 챙겨먹어야 한다던 말이 아직 기억에 남습니다. 그저 두 달 거쳐 가는 곳이라 생각하며 처음에 사람들과 적당히 거리를 두려했던 내 마음이 부질없었다는 걸 느꼈습니다.
물론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발은 아프고 날은 덥고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했습니다. 내게 미국은 다쳤을 때 만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들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나 위로가 그렇게 고마웠고 괜히 찡했습니다. 곤자가 대학의 스태프, 선생님과 친구들, 우연히 만났지만 다정하셨던 윤천주(95 생명) 선배님, 강유경 선생님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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