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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옛집 인터뷰-박문수 이사장 4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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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2-01 10:35 조회15,1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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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동문은 결코 둘이 아닙니다”

엄중한 시기, 소통 더욱 노력할 것
서강의 저력은 굳건, 뜻과 힘 모을 때


프란시스 부크마이어가 누구인지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박문수 신부님’이라고 하면, 많은 동문들이 ‘아! 잘생긴 사회학과 교수 신부님’ 이렇게 기억하곤 한다. 도시빈민운동가로도 활동한 박문수 신부(사회학과 명예교수)가 지난해 8월 학교법인 서강대학교 제18대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박문수 이사장은 친숙한 개량한복 차림에 넉넉한 미소로 일행을 맞아주었다.

>> 이사장으로 취임하신 지 4개월 정도 지났습니다만, 취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소감이 어떠신지요?
지금은 서강의 엄중한 시기, 어떤 의미에서는 갈등의 시기지요. 그런 만큼 이사장의 중책이 더욱 무겁게 다가옵니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요. 동문들을 포함해서 많은 분들을 만나서 꾸준히 대화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대화와 소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1999년 부터 2014년까지 법인 이사직을 맡았었는데, 그 점도 제가 임명된 배경일 겁니다. 이사회와 학교를 잘 아는 사람이 좋겠다는 판단을 해주신 거죠.

>>신임 이사장으로서, 지금처럼 중차대한 시기에 어떤 일에 중점을 두고자 하시는지요?
새로운 일을 펼쳐나가고 사업을 벌이고, 이런 것보다는 학교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의견을 듣고 모으는 일, 끊어진 것이 있다면 다시 이어나가는 일,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힐링, 치유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만, 깊은 의미의 힐링이 필요한 시기가 지금입니다. 이사장의 최우선 역할을 바로 그러한 것에 두고 노력 중 입니다.

>>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15주년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으셨습니다. (2016년 12월 9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12월 9일은 세계인권선언의 날이기도 했습니다. 받을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감사한 일이지요.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철거민 주거권과 인권 보장을 위해 일한 점을 평가해주셨습니다. 안중근(토마스) 의사가 이미 100년 전에 인권사상을 바탕으로 동양평화론을 펼치셨죠. 우리 대한민국의 그런 전통을 생각할 때, 뜻깊은 훈장을 받아 큰 영광입니다.

>> 박문수 이사장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도시빈민운동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70년대부터 정일우 신부님, 제정구 전 의원, 그밖에 많은 활동가들과 함께 했지요. 청계천에서 처음 만나 활동했는데, 주민 가운데 지도자가 나오고 주민 스스로 방향을 정하는 것, 함께 살고 함께 투쟁하고 하면서 명실상부한 공동체성, 공동체 정신을 구현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이후 시흥 지역에서 복음자리 운동을 펼쳤지요. 1986년 상계동 강제철거가 큰 계기가 됐어요. 그 전까진 대학에 몸담은 학자로서 돕는다는 차원이었는데,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 겁니다.

>>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재개발 강제철거가 더욱 강도 높게 진행됐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습니다. 서강대 학부 학생들이 한 번은 주민들이 매우 어려웠던 상황에 직접 가서 도운 적도 있습니다. 90년대에는 사회학과 대학원생들이 현장과 연계해서 직접 참여하고, 또 연구하는 방식을 취했지요. 그러다가 1999년 교수직에서 물러나 서울대교구 빈민사목 무악동 선교본당 주임 신부직을 맡았습니다. 이후 10년 간 활동하면서 지역 공동체 형성을 위한 일에 힘썼지요.

>>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겠습니다. 예수회 입회 시절을 돌아보신다면?
대학 1학년 마치고 예수회에 입회했습니다. 처음부터 선교사를 지망했는데 마침 예수회 위스콘신 관구가 한국을 맡고 있었지요. 이미 서강에 계시던 트레이시 신부님 등과 편지도 주고받고 하면서 한국행을 준비하다가 1969년에 처음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어 공부도 하고 혜화동 신학교에서 신학과정도 공부했습니다. 1973년에 김수환 추기경님께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 사회학자가 되신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당시 한국은 노동운동이 막 생기는 시기였지만 탄압이 무자비했어요. 인권 유린 상황도 심각했고요. 저는 본래 생물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대학 때도 철학과 함께 생물학을 공부했으니까요. 그런데 한국의 현실을 깊이 알아갈수록 실험실에서 생물학을 연구하는 게 나의 길이 아닌 것 같다, 이런 생각도 깊어졌습니다. 사회 정의(正義) 문제로 방향을 정해야겠다 싶었던 거죠. 존P.데일리 신부님과 상의한 끝에 사회학으로 박사과정 전공을 바꿨습니다. 이후 하와이대학에서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1979년 서강에 부임했습니다.

>> 1969년 처음 서강에 오셨을 때, 또 1979년 교수로 부임하셨을 때 느낌은 어떠셨는지요?
학생 숫자도 적고 전체적인 규모도 지금과 비교하면 참 작았지요. 처음 와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저는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배웠어요. 규모가 작은 만큼 ‘서강가족’이라는 말이 실감나던 시절이었죠. 1979년 교수로 부임했을 때 박정희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죠. 학기가 사실상 중단됐어요. 기말고사를 못 치렀는데도 학점을 매겨야 해서 곤혹스러웠던 기억도 납니다. 1980년에는 전두환 군사반란, 광주민주화운동이 이어지면서 학사 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어요.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학기를 마칠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이사장님의 본관이 마포다, 이런 설이 있는데 궁금합니다.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귀화하면 더 열심히, 끝까지 한국에서 활동할 수 있겠다 판단해서 1985년 대한민국으로 귀화했습니다. 호적에 본관을 적는 곳이 있는데, 저는 그냥 공백으로 두었어요. 그래서 굳이 제 본관이라면 ‘공백’이 아닐까 합니다. (웃음) 마포의 서강대에 오래 몸담고 있으니까 ‘마포 박씨’다, 이건 농담이 전해진 거예요.

>> 박정희 정권이 끝나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는 시기에 부임하셨는데, ‘80년대’의 대학은 지금과 참 많이 달랐지요.
정치적, 사회적으로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어려운 일도 많았습니다. 사회학과는 학문적 특성 자체가 사회 현실과 밀접하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학생운동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런 중에도 학생운동과 학업을 모두 열심히 병행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고요. 그런 면에서 제가 몸담은 사회학과의 80년대 초반 학번들이 기억에 깊이 남습니다. 아무래도 그 때와 비교하면 요즘 학생들은 각자가 추구하는 것들이 참 다양하죠. 개성일 수도 있고 약간의 개인주의 성향일 수도 있겠지만, 학교생활에 임하는 자세와 공부 자질은 예나 지금이나 참 좋아요.

>> 학교가 예전 같지 않다, 위상이 떨어졌다, 우려하는 동문들이 적지 않습니다만.
그런 우려를 잘 알고 있습니다. 70년대엔 행정은 영어와 미국식이고 교수는 한국어, 이런 문제가 있었지만 활발한 소통으로, 특히 존P.데일리 총장님의 리더십으로 극복해냈죠. 80년대에는 예수회 한국화와 관련해서 과도기적 위기가 있었고요. 또 80년대에 졸업정원제가 시행되면서 학생 숫자가 갑자기 크게 늘었어요. 이에 따라 교육 시설 부족을 비롯한 많은 문제가 주어졌죠. 이 점은 90년대까지도 이어졌고요. 서강에는 늘 크고 작은 위기가 있었던 거죠.

그밖에 다양한 위기들이 있었지만 우수한 교수진, 엄정한 학사관리, 교육과 연구의 수월성(秀越性), 이런 지향점과 추구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신입생들의 자질도 여전히 매우 우수하고요. 학교에 대한 우려는 할 수 있고, 또 해야 합니다만 서강이 추구하는 기본 가치와 목표, 전통, 그리고 저력은 굳건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가 뜻을 모으고 힘을 합쳐나간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서강의 역사는 이제 짧지 않습니다. 옛 모습과 지금 모습을 단면으로 비교하기보다는 역사적 연속성을 눈여겨 볼 필요도 있어요.

>> 동문과 학교의 관계는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학교와 동문은 결코 둘이 아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같은 ‘서강 가족’이지요. 동문 여러분이 모교에 관심을 갖고 기여하고, 또 후배들도 도우시고 기회 있을 땐 구체적인 역할도 하시기를 기대합니다. 동문들의 기여가 더욱 활성화되면 좋겠습니다. 물론 모든 동문들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활동하긴 어렵지요. 직접적으로 학교에 기여하지는 않더라도, 모교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주변을 돕는다면, 그것이 곧 모교 발전에 기여하는 길입니다.

>> 마지막으로 동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제 새 총장이 선임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이사회와 학교가 심기일전해서 학교 발전 방향을 더욱 구체적으로 잡아나가게 될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해서 발전을 추진해나갈 것이고요. 이사회도 새로운 각오로 최선을 다해 나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동문들께서 많이 성원해주시고 협력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학교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서만큼은 누구나 같다고 봅니다. ‘서강 가족’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에서 큰 힘이 나온다고 믿어요. 동문 여러분, 사랑합니다! 새해 인사도 미리 드립니다. 새해엔 더욱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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